신앙과 권력의 위험한 동행 — 나치 독일, 이란, 그리고 오늘

2025. 5. 7. 17:50시사

정치와 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손을 맞잡아 왔다. 신앙이 정치의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권력이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지탱해 주는 이 공생 관계는 겉보기엔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이 밀월이 얼마나 쉽게 폭력과 억압의 서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바티칸과 히틀러 정권 간의 관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히틀러는 초기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가톨릭과 손을 잡았고, 교황청 역시 반공주의를 명분 삼아 파시스트 정권과 외교적 타협을 시도했다. 이 밀월은 ‘콘코르다트’라는 이름의 정교협약으로 가시화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독일 내 가톨릭 정치세력의 해체, 교회의 발언권 약화, 그리고 정권의 종교 탄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1937년 교황 비오 11세는 히틀러 체제를 정면 비판하는 회칙 *Mit brennender Sorge(불타는 걱정으로)*를 발표하며 인종주의와 개인숭배, 종교 탄압을 규탄했다. 이는 교회의 뒤늦은 양심의 목소리였지만, 이미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히틀러에 투표했고, 정권은 교회를 향한 탄압을 공공연히 가속화하고 있었다. 정치적 현실주의가 종교의 도덕성을 잠식한 결과였다.

이와 유사한 교훈은 중동의 현대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등장한 이란의 신정 체제는 종교가 정치의 정점에 설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알리 하메네이 등)는 신의 뜻을 대변하는 존재로 간주되며, 정치·사법·언론·군사까지 전방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는 수십 년에 걸친 표현의 자유 억압, 여성에 대한 구조적 통제, 국제 사회와의 고립이다. 종교가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초래한 것은 경건함이 아니라 폐쇄성과 억압이었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절대성이다. 정치적 판단은 타협과 조율을 전제로 하지만, 종교는 본질적으로 진리를 전제한다. 이 둘이 섞이면, 반대 의견은 곧 ‘불경’이나 ‘배신’으로 간주되고, 비판은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정치적 논쟁이 도덕적 재판으로 둔갑할 때,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는 무너지고 만다.

현대 사회에서도 그 위험은 여전하다. 특정 정당이 종교 단체의 조직표를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거나, 종교 지도자가 공공연히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그럴수록 우리는 정치와 종교의 거리를 분명히 되짚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권력에 기대어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양심으로서 사회를 비추는 등불이어야 한다.

종교는 권력의 심장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권력이 진리를 왜곡할 때 가장 먼저 그것을 고발할 수 있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나치 독일의 가톨릭, 이란의 신정국가, 그리고 오늘날의 정치 종교화 현상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신앙은 권력의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경계를 지키는 수호자가 될 것인가?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단지 교회의 침묵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신념과 권력이 만나는 자리에서 어떠한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다. 침묵할 것인가, 말할 것인가. 손을 잡을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7wYxf2MK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