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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크라시의 환상과 리버럴 데모크라시의 잔존
이병한은 저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통해 섬뜩하지만 매혹적인 미래를 경고한다. 인터넷과 카메라가 촘촘히 깔린 세상, 인간의 언어와 표정, 심박수까지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거대한 데이터 네트워크가 마침내 인간의 '본심'과 '진심'을 추론해 낼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여기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그리고 양자컴퓨터의 가공할 연산력이 더해지면 미래 예측마저 가능해질 것이라 본다. 그리하여 향후 20년 내에 '디지털 데이터크라시(Datacracy)'가 '리버럴 데모크라시(자유민주주의)'를 급속도로 대체할 것이라는 문명사적 전망을 내놓는다.실리콘밸리의 테크 엘리트들이 꿈꾸는 이 기술 결정론적 시나리오는 정교한 감시 사회의 도래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담론의 이면에는 '데이터'라는..
2026.07.11 -
[어제 본 영화] "욕창", 돌봄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연대기
영화 ‘욕창’은 누군가를 돌본다는 행위가 어떻게 일상의 균열을 만들고, 그동안 간신히 봉합해 두었던 가족 내부의 곪아 터진 상처를 드러내는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감독 심우일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모를 둘러싼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통해, 돌봄 노동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고 해체하는지 객관적이며 서늘한 시선으로 관찰한다.영화의 제목인 ‘욕창’은 단순히 장기간 누워 있을 때 발생하는 물리적인 피부 질환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번 생기면 쉽게 낫지 않고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파고드는 지독한 상처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이 상처에 은유한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자식들에게 숭고한 효도의 의무이자, 동시에 각자의 일상을 짓누르는 벗어나고 싶은 무거운 굴레로 작동한다...
2026.06.20 -
"[어제 본 영화] 운명과 성격의 잔혹극, 영화 《캐릭터》"
네덜란드의 거장 마이크 반 디엠 감독의 장편 데뷔작 《캐릭터》(Karakter, 1997)는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lm)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은 네덜란드-벨기에 합작 영화다. 페르디난드 보르데비크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인간의 성격(Character)이 곧 그의 운명이다"라는 고대 그리스 희랍 비극 스타일의 묵직한 주제 의식을 화면 가득 무겁게 풀어낸다.영화는 주인공 야콥 빌럼 카타드레퍼가 자신의 생부이자 냉혹한 고리대금업자인 드레버하겐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취조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야콥이 털어놓는 과거의 기억은 미스터리 추리 구조를 취하며 관객을 숨 막히는 갈등의 심연으로 인도..
2026.06.20 -
[김영민 읽기] 이소룡의 추억 : 스타일은 양식이 아니다
"공부론" 에서...이소룡의 추억 : 스타일은 양식이 아니다무술가 이소룡(李小龍, 1940~1973)은 어떤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태하거나 보수적인 치들은 종종 스타일에 반감을 지니지만, 스타일은 주류의 각질을 뚫는 아웃사이더의 징후로 일정한 혐오감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헤겔(G. Hegel)과 마르크스(K. Marx)의 분쟁에서 보듯이, 스타일이 없이는 진정으로 스승과 결별할 수조차 없다. 미완의 를 유작으로 남긴 채 이소룡이 세상을 뜨자 수많은 잡룡들을 내세워 모작들이 제작되었지만, 그의 스타일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만 날로 분명해졌다. 그러나 양식(Typus)은 스타일이 아니다. 요컨대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양식은 오히려 흉내 내기의 네트워크를 ..
2026.06.08 -
AI 시대의 기술 봉건주의: 디지털 영주와 국가 안보의 충돌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인류에게 미증유의 풍요를 약속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재편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피터 틸, 알렉스 카프, 샘 알트만 등 IT 업계의 거두들이 던지는 메시지와 최근의 거시경제적 지표들은 AI 기술이 소수에 집중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지배 구조, 즉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킨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등이 정의한 '클라우드 자본(Cloud Capital)' 개념은 자본주의가 플랫폼 소유주에게 지대를 지불하는 봉건적 구조로 회귀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제 시장의 경쟁은 모호해지고, 플랫폼 영주가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도래하고 있다. 기술 봉건주의의 핵심은 AI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2026.06.07 -
우리말
가윗사람: 필요 밖의 사람. 또는 필요 없는 사람.예문: 그는 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가윗사람"으로 겉돌 뿐이었다.감쪼으다: 글이나 물건 따위를 윗사람이 살펴볼 수 있게 하다.예문: 이번에 새로 작성한 연구 보고서를 소장님께 "감쪼았다".개신개신: 게으르거나 기운이 없어 자꾸 나릿나릿 힘없이 행동하는 모양.예문: 밤샘 작업을 마친 연구원들이 피로에 지쳐 "개신개신" 걸어 다녔다.겁박: 으르고 협박함.예문: 상대 업체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우리를 "겁박"했으나 통하지 않았다.겨끔내기: 서로 번갈아 하기.예문: 두 사람이 "겨끔내기"로 야간 당직을 서기로 합의했다.고동: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나 계기.예문: 이번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낸 것이 프로젝트 성공의 "고동"이 되었다...
202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