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사건

2024. 12. 2. 10:42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사건은 그의 사후 8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문학계와 법조계를 뜨겁게 달군 복잡한 법적 분쟁이다. 이 사건은 카프카의 유고를 둘러싼 개인과 국가 간의 소유권 다툼으로, 문학적 유산의 소유와 보존에 대한 깊은 논의를 촉발했다.

사건의 배경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생전에 친구이자 문학적 동료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와 편지, 일기 등을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브로트는 이 유언을 어기고 카프카의 작품들을 보존하여 출판하였고, 이는 카프카를 20세기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939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로트는 카프카의 원고를 가지고 프라하를 떠나 텔아비브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비서였던 에스테르 호페를 통해 원고를 관리하였다.

소송의 발단

브로트는 1968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유산, 즉 카프카의 유고를 에스테르 호페에게 남겼다. 에스테르는 이후 카프카의 원고 일부를 경매에 부치기도 했으며, 1988년에는 소설 '소송'의 원고를 독일 마르바흐의 독일문학 아카이브에 200만 달러에 판매하였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가 사망하자, 그녀의 딸인 에바 호페와 루트 위스틀리치는 어머니로부터 이 원고들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이 상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카프카의 유고는 국가의 문화유산으로서 도서관에 귀속되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적 공방

소송은 2007년 텔아비브 가정법원에서 시작되어 지방법원과 대법원을 거치며 9년간 이어졌다. 에바 호페 측은 어머니 에스테르가 브로트로부터 합법적으로 유산을 상속받았으며, 따라서 자신들도 정당한 소유권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브로트의 유산이 개인에게 귀속될 수 없으며, 특히 카프카의 유고는 유대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공공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브로트가 에스테르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증여가 아닌 신탁으로서, 그녀가 이를 딸들에게 상속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판결과 그 영향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카프카의 유고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개인의 소유권과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에바 호페는 이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를 시도했으나, 2018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문화적 함의

이 사건은 문학적 유산의 소유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카프카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그의 유작은 친구의 결정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에는 국가와 개인 간의 소유권 다툼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는 문학 작품의 소유권이 단순히 개인의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으로서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사건은 문학적 유산의 소유와 보존, 그리고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 간의 복잡한 관계를 조명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