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선의 산하를 걷다 –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특별전을 다녀와서

서호60 2025. 5. 8. 11:38

 

 

조선 후기의 하늘과 산, 그리고 바위와 물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화선지 위에 담긴 조선의 풍경은 이국의 공기 대신, 바로 ‘이 땅의 숨결’이다. 바로 겸재 정선의 붓끝에서 태어난 진경산수화가 그렇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겸재 정선》 특별전은 그런 ‘조선의 산하’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이번 전시는 겸재 정선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기획전으로, 그의 대표작들을 포함한 총 165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정선은 우리가 흔히 ‘산수화’ 하면 떠올리는 이상화된 중국의 풍경이 아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걷고 올라간 조선의 강산을 화폭에 담았다.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실제 풍경과 사유, 정서가 결합된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구현한 것이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진경에 거닐다’에서는 인왕산, 금강산, 경복궁 등 조선의 명승지를 그린 걸작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특히 국보로 지정된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그 장대함과 생동감으로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비 갠 후 먹빛 구름이 걷히며 드러나는 인왕산의 윤곽은 오늘날의 풍경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이며, 동시에 그 너머의 정서를 품고 있다.

2부 ‘문인화가의 이상’에서는 진경산수화 외에도 화조화, 고사인물화,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독서여가도」 등이 전시되어, 정선이 단순한 풍경 화가가 아닌 조선 문인의 미적 감수성과 철학을 지녔던 인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조선 후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인문적 체험의 장이다. 미술관이 위치한 호암의 전통정원 ‘희원’을 함께 산책하다 보면, 정선이 화폭에 담았던 그 자연이 바로 지금 우리 곁에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문화와 자연이 겹쳐질 때,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는 비로소 완성된다.

붓 하나로 조선을 기록한 정선의 세계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한 애정,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속의 고요한 사유까지. 호암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단지 옛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풍경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