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의 《寄賀蘭銛》
寄賀蘭銛 (하란섬에게 부침)
朝野歡娛後 (조야 환오 후)
乾坤震蕩中 (건곤 진탕 중)
相隨萬里日 (상수 만리 일)
總作白頭翁 (총작 백두옹)
歲晩仍分袂 (세만 잉 분몌)
江邊更轉蓬 (강변 갱 전봉)
勿云俱異域 (물운 구 이역)
飮啄幾回同 (음탁 기회 동)
1. 朝野歡娛後 (조야 환오 후)
- 朝(조): 조정, 궁궐 (중앙 정부)
- 野(야): 들판, 민간 사회 (백성)
- 歡娛(환오): 즐거워함, 환락
"(조정과 백성 모두) 즐거워하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
2. 乾坤震蕩中 (건곤 진탕 중)
- 震蕩(진탕): 흔들리고 요동치다, 전란이나 큰 변화
"하늘과 땅이 크게 흔들리는 혼란 속에서"
3. 相隨萬里日 (상수 만리 일)
- 相隨(상수): 서로 따르다, 동행하다
- 萬里(만리): 먼 길, 아주 먼 거리
"만 리 길을 서로 동행하던 그 날들"
4. 總作白頭翁 (총작 백두옹)
- 總(총): 결국, 마침내
- 作(작): 되다, 만들다
- 白頭翁(백두옹): 흰머리의 노인
"결국 우리는 모두 백발의 노인이 되었구나"
5. 歲晩仍分袂 (세만 잉 분몌)
- 歲晩(세만): 해가 저물다, 나이가 들다
- 仍(잉): 여전히, 다시금
- 分袂(분몌): 이별하다, 갈라서다
"나이가 들었건만 또다시 이별해야 하니"
6. 江邊更轉蓬 (강변 갱 전봉)
- 更(갱): 다시, 거듭
- 轉蓬(전봉): 바람에 떠도는 쑥(방황하는 존재의 은유)
"강가에서 또다시 떠도는 쑥처럼 헤매는구나"
7. 勿云俱異域 (물운 구 이역)
- 勿(물): ~하지 말라
- 云(운): 말하다, 이야기하다
- 俱(구): 함께, 모두
- 異域(이역): 다른 지역, 이국땅
"서로 다른 땅에 있다 한탄하지 말게"
8. 飮啄幾回同 (음탁 기회 동)
- 飲啄(음탁): 마시고 먹다 (함께 식사함)
- 幾回(기회): 몇 번이나, 얼마나
- 同(동): 함께, 같이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조정과 백성 모두 즐거워하던 시절이 지나고,
천지가 흔들리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만 리 길을 함께했다.
그러나 결국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나이 들어서도 다시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강가에서 바람에 떠도는 쑥처럼 방황하지만,
서로 다른 땅에 있다고 한탄하지 말자.
과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함께 마시고 먹을 수 있을 것인가?
1. 시대적 맥락과 관련 사건
① 당나라 후반의 격변기: 안사의 난(755~763) 이후의 혼란
두보의 시 《寄賀蘭銛》(하란섬에게 부침) 은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의 여파 속에서 쓰였다.
- 안사의 난은 당나라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내전 중 하나였으며, 국토가 황폐화되고, 인구가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등 사회적·정치적 혼란을 초래했다.
-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군벌(藩鎮, 지방세력)들이 각지에서 권력을 장악하며 중앙 정부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다.
- 763년에는 티베트(토번)의 침략이 있었고, 764년은 당나라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정세를 회복하려 애쓰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격변 속에서, 두보는 한때 관리로 활동했지만 전란으로 인해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② 두보의 생애와 이 시가 쓰인 시점
두보(杜甫, 712~770)는 젊은 시절부터 높은 뜻을 품고 벼슬길을 꿈꾸었지만, 안사의 난이 발발한 후 고향과 가족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 759년: 전란을 피해 쓰촨성(四川, 촉 땅)으로 도망쳐 성도(成都)의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 762년: 다시 전란이 일어나자 성도를 떠나 도망다녀야 했다.
- 764년: 쓰촨성 랑주(閬州)에서 친구 하란섬(賀蘭銛)을 만남.
두보는 764년 초반까지 랑주에 머물렀고, 당시 같은 유랑의 처지였던 하란섬과 함께 지내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하란섬은 곧 고향(현재의 강소성(江蘇) 지역)으로 돌아가야 했고, 두 사람은 이별해야 했다.
두보는 하란섬과 이별하면서 《贈別賀蘭銛》(하란섬과 이별하며) 이라는 시를 지었고, 그해 말(764년 겨울경)에 다시 그를 그리워하며 《寄賀蘭銛》을 썼다.
③ 하란섬(賀蘭銛)은 누구인가?
하란섬(賀蘭銛, Helan Xian)은 역사적으로 두보의 친구였던 인물로,
- “강소성(江蘇省) 오(吳, 지금의 소주(蘇州) 출신” 으로 기록되어 있다.
- 두보와는 젊은 시절에 알고 지낸 친구였으며, 안사의 난 이후 다시 만나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 전란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 두보는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 두보는 하란섬과 젊었을 때는 함께 즐겼고(朝野歡娛 후), 이후 전란의 격변을 겪으며(乾坤震蕩 중) 백발이 되었다(總作白頭翁) 고 회고한다.
2. 《寄賀蘭銛》의 문헌적 연구 및 학술적 분석
① 이 시의 주요 해석과 문학적 평가
《寄賀蘭銛》은 전란을 겪으며 노년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오랜 친구로서 이별하는 감정을 담은 시다.
- 전란의 시대적 혼란을 배경으로 두보와 하란섬의 우정을 조명하는 작품으로 해석된다.
-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또 그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 마지막 구절 “勿云俱異域 飮啄幾回同”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탄하지 말라,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인가)는 인생의 무상함 속에서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시는 후대 학자들에 의해 “이별시(離別詩)의 대표적인 작품” 으로 평가되며,
특히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문인들이 겪었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시로서 큰 문학적 가치를 갖는다.
② 문헌에서의 언급 및 학술적 연구
1) 역사적 문헌에서의 언급
- 《전당시(全唐詩)》 : 당나라 시들을 집대성한 책으로, 《寄賀蘭銛》이 포함되어 있음.
- 《杜詩詳注》(두보 시집 주석서) : 청나라 학자 구조오(仇兆鳌)가 주석한 두보 시집에서 이 시를 상세히 해설.
2) 송나라 이후의 문학적 연구
- 송나라 황정견(黃庭堅) 은 이 시를 초서(草書)로 필사하여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함.
→ 이 작품은 현재 중국 자금성(故宮博物院)에 보관된 명필 필사본 중 하나로 전해짐. - 청나라 주석가들은 “이 시는 단순한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시대의 격변을 담아낸 작품” 이라 평가.
3) 현대 중국 및 한국 학계에서의 연구
- 중국 문학 연구에서는 두보의 시를 “詩史” (역사를 기록한 시)라고 부르며,
이 시가 안사의 난 이후 사회적 불안 속에서 지식인들이 겪은 방황과 이별을 표현했다고 평가. - 한국 학계에서도 《寄賀蘭銛》은 두보의 후기 작품으로 주목받으며,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한 《정본완역 두보전집》 에 포함되어 있음.
3. 문학적·역사적 의의 및 결론
① 문학적 의의
- 우정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대표적 이별시
- 당나라의 역사적 혼란과 개인의 유랑을 함께 담은 시
- 시어(詩語)의 정교함과 정서적 깊이
② 역사적 의미
- 안사의 난 이후, 지식인들이 겪은 유랑과 인간관계를 조명
- 전쟁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를 문학으로 기록한 작품
③ 학술적 연구 방향
- 중국의 전통 문학과 사대부 문화 속에서 이 시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분석 가능
- 당대 지식인들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
《寄賀蘭銛》은 단순한 친구와의 이별을 넘어, 당나라 후기의 격동기를 반영하는 중요한 문학적·역사적 기록이다.
두보는 전쟁 속에서 변화해버린 세상과 노년이 되어버린 자신과 친구의 처지를 대비하며, 인생의 무상함과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이 시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겪은 시대적 아픔과 인간적인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오늘날에도 역사와 문학을 함께 연구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